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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를 믿는다

나는 불교를 믿는다(230530) - 제2장 부처님[깨달음 7)아라한도 몸의 괴로움 있음 & 부처님이 성취한 법](근본경전연구…

▣ 나는 불교를 믿는다(230530) - 제2장 부처님[깨달음 7)아라한도 몸의 괴로움 있음 & 부처님이 성취한 법](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DGOA9qNnSY4

 

 

깨달음에서 마음의 문제는 해소되었지만, 생명의 조건 때문에 몸을 조건으로 하는 문제는 남아 있다는 점과 부처님이 성취한 법이 takka[()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섬으로 대표된다는 두 가지를 살펴보았는데, 아라한의 삶에서 마음에 속한 괴로움은 없으나 몸에 속한 괴로움은 남아 있다는 점과 욕루(慾漏)-유루(有漏)-무명루(無明漏)로 구성된 번뇌[()]가 전도된 상()이라는 점 그리고 초기 경전이 정의하는 공()의 개념에 주목하였습니다. 한편, 중생의 대표 개념은 ālaya(잡기-잡음)으로 제시되는데, 이것 때문에 중생들은 여기에서의 조건성인 연기(緣起)열반(涅槃)이라는 두 가지 토대를 알기 어렵습니다.

 

6. 생명의 조건 때문에 이 몸을 조건으로 하는 불안은 있음 ― (MN 121-공(空)의 작은 경) 


깨달음은 심(心)이 집착에서 벗어나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는 것이어서 몸을 기준으로 의미를 가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번뇌를 부수고 깨달은 자에게도 몸으로의 삶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몸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통한 완전한 고멸(苦滅) 또는 불사(不死)의 실현은 이 몸이 무너진 뒤에 다시 몸으로 가지 않음 즉 태어나지 않는 것을 통해 완성됩니다. 윤회(輪廻)에서 벗어남이고 열반(涅槃)의 실현입니다. 부처님의 삶 가운데 돌아가심에 대해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입니다. 


• 아라한의 삶 


1) 마음에 속한 괴로움은 없으나 몸에 속한 괴로움은 남아 있음 ― ‘욕루(慾漏)를 연(緣)한 불안들은 여기에 없다. 유루(有漏)를 연(緣)한 불안들은 여기에 없다. 무명루(無明漏)를 연(緣)한 불안들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생명의 조건 때문에 단지 이 몸을 조건으로 하는 육처(六處)에 속하는 것만큼의 불안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부처님의 삶 ― 몸과 마음의 관점에서.jpg


2) 번뇌[루(漏) ― 욕루(慾漏)-유루(有漏)-무명루(無明漏)] = 전도된 상(想) ― 그는 ‘욕루(慾漏) 상태의 상(想)에 속한 것은 공(空)하다.’라고 분명히 알고, ‘유루(有漏) 상태의 상(想)에 속한 것은 공(空)하다.’라고 분명히 알고, ‘무명루(無明漏) 상태의 상(想)에 속한 것은 공(空)하다.’라고 분명히 알고, ‘생명의 조건 때문에 단지 이 몸을 연(緣)한 육처(六處)에 속하는 것의 공(空)하지 않음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1_02&wr_id=5참조


3) 공(空)의 개념 = [거기에 없는 것=공(空)] ―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에 의해 그것의 공(空)을 관찰하고,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을 ‘존재하는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렇게도 사실에 따르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空)에 들어감이 있다. 


; 연기(緣起) 즉 공(空)을 말하는 용수 스님의 공(空)의 개념과 다름


7. 부처님이 성취한 법 ― (SN 6.1-범천의 요청 경) → 초기불교 백일법문(독송 및 개론) - (1-1)brahmāyācanasuttaṃ (SN 6.1-범천의 요청 경) 참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219

 

• 깨달음의 대표 개념 ― atakkāvacara =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섬 

• 중생의 대표 개념 ― ālaya[잡기-잡음] 

• 두 가지 토대 ― ①여기에서의 조건성인 연기(緣起)와 ②열반(涅槃) 


경은 부처님이 성취한 법을 심오 내지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심오 등의 서술은 ‘takka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라는 하나의 설명을 제외하면 모두 수식어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성취한 법은 ‘takka의 영역을 넘어선 것(atakkāvacara)’인데, 이것은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면 takka는 무엇입니까? vitakka(위딱까-떠오른 생각)은 vi-takka여서 takka로부터의 떠남이라는 조어적 구성 위에서 생각의 출발자리를 지시합니다. 그래서 생각 이전에 자리하는 것이 takka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인식을 가공하여 행위에 전달하는 내적인 영역입니다. 이 자리에서 상(想) 즉 번뇌가 작용하여 유위(有爲) 즉 중생의 삶을 이끌기 때문에 takka는 ‘애(愛)의 형성 과정’입니다. 그러나 번뇌의 부서짐[누진(漏盡)]에 의해서 무위(無爲) 즉 해탈된 삶을 실현하면 번뇌의 영향력을 극복하여 takka를 넘어선 상태가 되는데, atakka입니다. 이때, takka가 삶의 과정의 한 점이 아니라 영역을 가진다는 점에서 takkāvacara(takka의 영역)[애(愛)가 형성되는 영역]이란 개념이 나타나고, 부처님의 깨달음은 바로 이 영역을 넘어섬 즉 애(愛)의 형성 과정의 해소[애멸(愛滅)]라는 정의입니다. 번뇌의 부서짐[누진(漏盡)]에 의해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愛)에 묶인 중생의 삶에서 벗어나 해탈(解脫)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점에서 takka는 불교 교리의 중심입니다. 사마타-위빳사나로 번뇌를 부수고 심(心)이 번뇌로부터 해탈하는 자리가 바로 여기인데[심해탈(心解脫)-혜해탈(慧解脫) →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 특징적으로는, 마음은 살아있는 한 몸을 떠날 수 없지만, 작용의 측면에서 몸의 참여 없이 마음 혼자 인식하고 행위 하는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 「삶의 심오함의 끝에 닿은 깨달음」


현재의 불교계에는 takka의 개념이 해석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경(經)을 경으로 해석하지 않는 오랜 전통의 문제일 것입니다. 근본경전연구회 해피법당은 경으로 경을 푸는 공부[nikāya by nikāya]의 과정에서 takka의 개념을 발견함으로써 삶을 도식화하였는데, 「삶의 메커니즘」입니다. 


그리고 삶의 메커니즘에 번호를 매겨주면 십이연기(十二緣起)가 되는데, 삶의 이야기 위에서 부처님 가르침에 접근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부처님 가르침의 진정(眞正)입니다. 


삶의 메커니즘의 구명은 그대로 십이연기(十二緣起)의 해석입니다. 조만간 별도의 책으로 출판할 계획입니다. 그때까지는 nikaya.kr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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