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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메커니즘

(삶의 메커니즘) 오온과 십이처 그리고 활성화(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1231)

▣ (삶의 메커니즘) 오온과 십이처 그리고 활성화(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1231)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swQ3klx0rdQ

 

삶의 메커니즘에 대해 새로운 각도의 설명을 시도해 보았는데, 오온(五蘊)과 일체(一切) 즉 십이처(十二處)의 관계와 촉(觸)-작의(作意)에 의한 활성화까지이고, 메커니즘 전체의 절반입니다.


(SN 22.94-꽃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3_01&wr_id=8&sca=puppha)은 상(常)하고 안정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오온(五蘊)은 없고 무상(無常)하고 괴롭고 변하는 오온은 있다고 하면서 부처님이 깨닫고 실현한 것을 선언하는데, 세상에 있는 세상의 법이 오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은 세상의 법인 오온(五蘊)과 세상을 벗어날 때 실현되는 열반(涅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AN 3.137-출현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6_04&wr_id=1)은 행(行)과 법(法)에 대해 삼법인(三法印) 즉 제행무상(諸行無常)-제행개고(諸行皆苦)-제법무아(諸法無我)가 우리 삶에 적용되는 원리-이치라는 것을 깨닫고 실현했다고 선언합니다.


• sabbe saṅkhārā aniccā 제행무상(諸行無常)

• sabbe saṅkhārā dukkhā 제행개고(諸行皆苦)

• sabbe dhammā anattā 제법무아(諸法無我)


이렇게 존재하는 것들(SN 22.94-꽃 경)의 조건 관계(AN 3.137-출현 경) 위에서 부처님은 다시 여기에서의 조건성 즉 삶에서 괴로움이 생기고 자라나는 조건 관계를 깨닫고 실현했다고 선언하는데, (SN 12.20-조건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7&sca=%C4%81h%C4%81ra)입니다. 이런 삶의 조건 관계를 연기(緣起)라고 하는데, 열두 단계로 구성됩니다. 근본경전연구회는 이 열두 단계의 조건 관계를 해석하여 그림으로 그린 뒤, 「삶의 메커니즘」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삼법인(三法印)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일체개고(一切皆苦)-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번역합니다. 제행(諸行-sabbe saṅkhārā)을 일체(一切-sabba)라고 번역한 것인데, (SN 35.23-일체(一切)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01&wr_id=7&sca=sabba)의 의미에 견주면 타당한 번역입니다.


일체경(一切經)은 일체(一切)를 정의하는데,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내입처(六內入處)와 색(色)들-성(聲)들-향(香)-들-미(味)들-촉(觸)들-법(法)들의 육외입처(六外入處) 즉 십이처(十二處)입니다. 경은 더 나아가 ‘어떤 사람이 ‘나는 이 일체를 거부하고 다른 일체를 선언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에게 단지 그런 말이 있을 뿐이다. 동의를 얻지 못할 것이고 더 나아가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식으로든 그것이 영역 안에 있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SN 22.94-꽃 경)의 오온(五蘊)과 (SN 35.23-일체(一切) 경)의 십이처(十二處)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오온(五蘊)을 세상을 만나기 위해 세상에 맞게 배분해 펼친 것이 십이처(十二處)입니다.


세상 즉 밖의 색(色)인 색(色)들-성(聲)들-향(香)들-미(味)들-촉(觸)들과 안의 색(色)인 몸 즉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은 색(色)이고,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으로 펼쳐진 식(識)이 안의 색(色)인 근(根)과 함께 인식주관인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 내입처(內入處)가 되어 밖의 색(色)들을 인식합니다. 그러면 의(意) 내입처와 법(法)들이 남는데, 법(法)은 오온 가운데 남아있는 수(受)-상(想)-행(行)이고 의식(意識)과 의근(意根)이 비색(非色)인 수(受)-상(想)-행(行)의 법(法)들을 인식하기 위해 펼처진 의(意) 내입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체인 십이처는 육식(六識)과 육근(六根)이 함께한 것으로의 육내입처(六內入處)와 복수로 서술되는 영역(gocara)인 육외입처(六外入處)입니다.


그런데 오온(五蘊)이라 하든 십이처(十二處)라 하든 삶은 멈추어 있지 않습니다. 경은 촉(觸)과 작의(作意)에 의한 활성화를 설명하는데, 서로 조건 되는 식(識)과 명색(名色)인 활성존재(bhūta)와 작의(作意)에 의해 알고[식(識)] 촉(觸)에 의해 경험하는[수(受)] 활성화된 일체입니다. 특히, (SN 35.23-일체(一切) 경)부터 이어지는 29개의 경은 일체를 설명하는데, (SN 35.23-일체(一切) 경) 외에 28개의 경은 모두 활성화된 일체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일체는 활성화된 삶의 설명에 중심을 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활성화된 일체는 육식(六識)과 육근(六根)이 함께한 인식주관인 육내입처(六內入處)가 영역인 육외입처(六外入處) 중 작의(作意) 즉 의(意)의 작용(作用)을 통해 대상(visaya)을 주목하여 대상에 대한 앎으로의 육식(六識)을 생겨나게 하고, 내입처(內入處)-외입처(外入處)-식(識)이 함께하는 것으로의 삼사화합(三事和合) 촉(觸)에 의해 대상을 경험하는[수(受)] 과정입니다. 불교계에서는 아함 등의 영향으로 근(根)-경(經)-식(識) 삼사화합(三事和合)을 말하지만 니까야의 설명과는 다릅니다. 


한편, 육내입처를 이전의 업(業)이라고 설명하는 (SN 35.129-업(業)의 소멸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011&wr_id=17)도 주목해야 합니다. ― 「cakkhu, bhikkhave, purāṇakammaṃ abhisaṅkhataṃ abhisañcetayitaṃ vedaniyaṃ daṭṭhabbaṃ 비구들이여, 안(眼)은 이전의 업(業)이고 형성된 것, 의도된 것, 경험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육내입처에 반복)」


내입처(內入處)가 경험되는 것 즉 외입처(外入處)에 대해 유위(有爲)로 의도하고 행위 하는 것 즉 업을 지으면 상(想)이 잠재하고 식(識)이 머뭅니다(SN 12.38-의도 경). 식(識)이 머물고 늘어나면 명색(名色)이 참여하고 행(行)들이 성장하는데(SN 12.64-탐(貪) 있음 경), 활성존재(bhūta)와 활성화된 일체에 이어지는 행위의 전개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①내입처(內入處)는 이전에 외입처를 대상으로 행위 하여 머물고 늘어난 식(識)과 그때 참여하는 명색(名色)에 의해 식(識)과 근(根)[안의 색(色)]이 함께한 것이고, ②외입처는 밖의 색(色)[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과 수(受)-상(想)-사(思)[법(法)]이고, ③활성화 요소인 촉(觸)과 작의(作意)가 함께하여, 활성화된 일체는 식(識)과 명색(名色)인 활성존재(bhūta)와 일치된 요소로 대응합니다. 


이 외에 삶의 메커니즘은 이 몸으로의 순환적 삶과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다음 생의 삶으로 구분되고, 몸과 마음이 함께 인식-행위 하는 영역과 몸의 참여 없이 마음 혼자 인식-행위 하는 영역[takka]으로의 구분을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takka는 애(愛)의 형성과정인데, (SN 35-103-웃다까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01&wr_id=19&sca=sa%E1%B8%B7a)은 ‘몸은 종기고, 애(愛)는 종기의 뿌리’라고 말함으로써 takka가 몸 이전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때, takka[몸의 참여 없는 마음만의 인식-행위 영역]와 vitakka 이후[몸과 마음이 함께한 행위-인식 영역]의 과정으로의 구분은 뇌과학 등 물질을 전제하는 학문을 극복하기 위한 불교의 대응법을 제시하는데, 「vitakkayato vicārayato vitakkavipphārasaddaṃ sutvā 위딱까로부터 위짜라로부터 위딱까가 발산하는 소리를 듣는다.」라고 말하는 (AN 3.61-상가라와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5_06&wr_id=1)의 설명은 마음이 뇌에서 생긴다는 뇌과학의 해석을 넘어서서 takka에서 떠오르는 vitakka의 관찰이라는 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삶의 메커니즘의 중심은 ‘행위를 출발점으로 하는 세 개의 순환 구조[작은 순환고리-잠재 순환고리-큰 순환고리]’라는 점을 간략히 소개하였습니다.


● 특강에 함께한 김경민 법우님의 질문 


1. 법(法) = 수(受)-상(想)-사(思)


부파불교에서도 법(法)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는 등 전통에서 법외입처는 정확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온(五蘊)과 십이처(十二處)가 같은 것이라는 이런 이해에 의하면, 법(法)이 수(受)-상(想)-사(思)를 지시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2. 내입처(內入處) = 식(識)+근(根)


(SN 35.129-업(業)의 소멸 경)의 해석에서도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만, 준비 중인 책 「탐(貪)-진(嗔)-치(癡)」에서는 용례를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4&wr_id=43

 

3. 촉구생수상사(觸俱生受想思)의 관점에서의 촉(觸)


그런데 아함에서 설명하는 촉구생수상사(觸俱生受想思)의 관점은 니까야에는 없습니다. 촉(觸) 이후 수(受)-상(想)-사(思)의 과정이 전개되는 것이지 촉(觸)에서 세 가지가 함께 생긴다는 의미로 이 과정을 설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촉구생수상사(觸俱生受想思)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 (MN 109-보름달 큰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1_09&wr_id=1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rūpakkhandhassa paññāpanāya? ko hetu ko paccayo vedan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ko hetu ko paccayo saññ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ko hetu ko paccayo saṅkhārakkhandhassa paññāpanāya? ko hetu ko paccayo viññāṇakkhandhassa paññāpanāyā”ti?


“대덕이시여, 색온(色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수온(受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상온(想薀)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행온(行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식온(識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어떤 원인,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cattāro kho, bhikkhu, mahābhūtā hetu, cattāro mahābhūtā paccayo rūpa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vedan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saññ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saṅkhārakkhandhassa paññāpanāya. nāmarūpaṃ kho, bhikkhu, hetu, nāmarūpaṃ paccayo viññāṇakkhandhassa paññāpanāyā”ti.


“비구여, 색온(色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사대(四大)[네 가지 근본 물질]가  원인이고, 사대(四大)가 조건이다. 수온(受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촉(觸)이 원인이고, 촉(觸)이 조건이다. 상온(想薀)의 선언을 위해서는 촉(觸)이 원인이고, 촉(觸)이 조건이다. 행온(行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촉(觸)이 원인이고, 촉(觸)이 조건이다. 식온(識蘊)의 선언을 위해서는 명색(名色)이 원인이고, 명색(名色)이 조건이다.”


• (MN 147-라훌라의 가르침의 작은 경)/(SN 35.121-라훌라의 가르침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5_05&wr_id=1 

 

“taṃ kiṃ maññasi, rāhula, yamidaṃ cakkhu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nāgataṃ saññāgataṃ saṅkhāragataṃ viññāṇagataṃ tampi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라훌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촉(眼觸)의 조건으로부터 생기는 수(受)에 속한 것, 상(想)에 속한 것, 행(行)들에 속한 것, 식(識)에 속한 것도 상(常)한가, 무상(無常)한가?”


그러나 (MN 109-보름달 큰 경)의 설명은 촉구생수상사(觸俱生受想思)가 말하는 촉(觸)에 의해서 수(受)-상(想)-사(思)가 직접 생기는 현상을 말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으로의 색(色)과 식(識)의 조건 관계를 설명한 뒤에 촉(觸)에 의해서 삶이 활성화되면 수(受)가 촉에 의해서 생기고, 이어지는 삶의 과정에서 상(想)과 사(思)가 생겨나고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MN 147-라훌라의 가르침의 작은 경)도 촉(觸)에 의한 활성화로 수(受)가 생기면 상(想)과 사(思)의 과정에 의해 식(識)이 머물고 늘어나는 과정의 설명입니다. 


그래서 이런 접근성을 보여주는 경들에 의해서도, 니까야는 촉구생수상사(觸俱生受想思)의 관점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알아야 합니다.

Comments

아빈뇨 2022.01.02 16:28
감사합니다.
대원행 2022.10.29 22:33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59 참조 (초기불교(개론-신행지침) - 일체경(오온=일체 & 활성화)과 삼매경(자라남-줄어듦의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