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報)의 시기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문구가 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나타나서 애매함을 가집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나의 의미를 설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va는 iva[마치] 또는 eva[오직]이고, vā는 or[또는]입니다. 장음과 단음의 차이를 보여주지만 장음이 뒷 단어와의 연결 과정에서 단음화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upapajje는 upapajjati: to be reborn in; rises. (upa + pad + ya)의 반조태 1인칭 단수 현재형(1st.s.attanopada.present)이기도 하지만 upa(up to ~까지) - pajje로 분석할 수 있는데, pajje는 pajja: 1. a verse; a poem; 2. something good for feet. (m.) road; path. (nt.)의 처격입니다. 그래서 ‘걸어서 닿는 곳’이라고 해석하면 다음 생[내생(來生)]이 됩니다.
apare vā pariyāye는 apara와 pariyāya의 처격입니다. 그래서 ‘그 후에 오는 생(生)’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 apara: another, i. e. additional, following next, second
• pariyāya: order; course; quality; method; figurative language; a synonym; a turn. (m.)
● 용례
1. mahākammavibhaṅgasuttaṃ (MN 136.1)
여기서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 삿된 견해인 그에게 보(報)를 경험하게 한다.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
여기서 생명을 해치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가고 … 바른 견해인 그에게 보(報)를 경험하게 한다.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
2. nidānasuttaṃ (AN 3.34)
비구들이여, 탐(貪)으로 지었고 탐(貪)에서 생겼고 탐(貪)이 근원이고 탐(貪) 때문에 일어난 업(業)은 자기존재가 생겨나는 곳에서 익는다. 그 업이 익는 곳에서 그 업의 보(報)를 경험한다.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
3. nibbedhikasuttaṃ (AN 6.63)
비구들이여, 무엇이 업(業)들의 보(報)인가? 비구들이여, 세 가지 업들의 보를 나는 말한다. ㅡ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 비구들이여, 이것이 업들의 보라고 불린다.
4. paṭhamasañcetanikasuttaṃ(AN 10.217), dutiyasañcetanikasuttaṃ (AN 10.218)
짓고 쌓은 의도적인 업(業)들에게 경험하지 않고서 파괴되는 속성을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이다. 비구들이여, 그리고 나는 짓고 쌓은 의도적인 업(業)들에게 경험하지 않고서 괴로움의 끝을 만드는 것도 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