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4-(63~65)[불교의 효 - 운반되듯 놓임 - 모습-소리-거친 삶-법으로 재어보고 믿음](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0404)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nMm71V3CqwI
(AN 4.63-범천 경)은 부모를 공경하는 가문에 대해 범천-이전의 스승-이전의 신들과 함께하는 가문이라고 하는데, 효(孝)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알려줍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으로의 효는 보시-계-수행과 함께 공덕행이라는 이해가 중심에 있습니다. (AN 4.64-지옥 경)은 ‘죽음 이후를 직접 언급하는 표현인 ’운반되듯 지옥 또는 천상에 놓인다.’에 속합니다. (AN 4.65-색 경)은 모습(보이는 것)-소리(말하는 것)-거친 삶-법을 재어보고 확실한 믿음을 가지는 네 부류의 사람을 말하는데, 「소유의 삶 → 존재의 삶 → 벗어남을 위한 삿된 길(고행) → 벗어남을 위한 바른길(사성제-팔정도)」의 단계적 향상 과정으로 이해하였습니다.
(AN 4.63-범천 경)은 집에서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가문에 대해 범천과 이전의 스승 그리고 이전의 신들과 함께하는 가문이라고 하는데, 부모는 자식들을 돌보고, 양육하고, 이 세상을 가르쳐주는 등 많은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부모가 범천인 이유를 자-비-희-사 사무량심(四無量心)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이전의 스승인 이유는 이 세상을 가르쳐 주기 때문 그리고 신에 대한 봉헌의 측면에서 이전의 신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이 경의 주제는 효(孝)인데, ‘주제의 확장(AN-7) ‒ 「불교(佛敎)의 효(孝)」’에서 정리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으로의 효(孝)는 보시-계-수행과 함께 공덕행(功德行)이라는 이해가 중심에 있습니다.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114
(AN 4.64-지옥 경)은 생명을 해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음행에 대해 삿되게 행하고, 거짓을 말하는 네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은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고 하는데, ‘죽음 이후를 직접 언급하는 표현들 – 3)「운반되듯 지옥 또는 천상에 놓인다.」’에서 정리하였습니다.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352
(AN 4.65-색 경)은 모습(보이는 것)-소리(말하는 것)-거친 삶-법을 재어보고 확실한 믿음을 가지는 네 부류의 사람을 말합니다.
색(色-rūpa)은 문맥에 따라 ①물질-②보이는 것-③몸의 세 가지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②보이는 것’이어서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믿음을 일으키는 경우를 말합니다.
ghosa는 소리인데, sadda와 구별되어야 합니다.
• sadda: sound; noise; a word. (m.) 소리. 잡음-소음. 단어
• ghosa: sound; shout; utterance. (m.) 소리. 외침-소리침. 발언
그래서 여기서는 발언 즉 주장-가르침으로 판단하고 믿음을 일으키는 경우를 말합니다. 특히, (MN 43-교리문답의 큰 경)은 바른 견해가 생기기 위한 두 가지 조건으로 남의 목소리(parato ghoso)와 여리작의(如理作意-yoniso manasikāro)를 말하는데, 여기의 의미와 같습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5_03&wr_id=30
거친 삶(lūkha)은 고행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는데, (MN 12-사자후 큰 경)에서 설명됩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2_02&wr_id=4
법은 바른 깨달음에 의해 지시되는 사성제(四聖諦)의 법이라고 이해하였는데, 바르게 진리-사실로써 재어보고 확실한 믿음을 가지는 삶입니다.
한편, 게송은
1) 모습을 재어보고 소리를 따르는(anvagū) 사람 ― 욕탐의 지배를 받음 → 겉모습을 보고 믿음을 일으켜 그의 주장을 따르는 낮은 삶(소유)에 속한 사람
2) 전반적으로 무명에 덮여서 안의 것을 알지 못하고 밖의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 ― (욕탐의 극복을 위해 모습을 재어보지는 않지만) 소리에 이끌림(vuyhati) → 소유의 삶은 넘어섰지만, 존재의 삶에 속한 안팎의 오염원을 해소하는 길 즉 벗어남의 영역으로 들어서지 못한 사람
3) 안의 것은 알지 못하지만, 밖의 것은 통찰하여 밖으로 과(果)를 보는 사람 ― 소리에 이끌림(vuyhati) → 여실지견(如實知見)한 예류자
4) 안의 것을 꿰뚫어 알고 밖의 것을 통찰하여 장애 없이 보는 사람 ― 소리에 이끌리지 않음(na vuyhati) → 해탈지견(解脫知見)한 아라한
을 설명합니다.
이때, 안과 밖은 나와 세상, 내입처와 외입처, takka의 안과 밖을 말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takka의 안과 밖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친 삶(lūkha)은 소유의 삶을 넘어 존재의 삶에 오른 수행자가 존재의 삶에서 벗어나 해탈된 삶을 실현코자 하는 과정에서 고(苦)를 수반하는 길인데, 바른 방법이 아니어서 깨달을 수 없지만, 법은 바른길이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런 단계적 향상 과정은 (SN 56.11-전법륜 경)의 가르침에서 확인됩니다. → 「초기불교 백일법문(독송 및 개론) - (3-1)dhammacakkappavattanasuttaṃ (SN 56.11-전법륜 경)[깨달음의 재현](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30530)」 참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