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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스님과의 대화/기타

해피스님과의 대화(서울 240608) ― 1. 중도 & 거울과 관련한 주제 & 수행의 구조와 대상의 전개(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

▣ 해피스님과의 대화(서울 240608) ― 1. 중도 & 거울과 관련한 주제 & 수행의 구조와 대상의 전개(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TbK8Ykkk-gY

 

중도는 고멸도성제인 팔정도의 실천인데, magga()paṭipadā(실천)의 차이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수행은 마음이 몸과 함께 진행하는 것인데, 마음만큼 몸도 삶에서 비중이 큽니다. 거울과 관련한 주제의 질문에 답하였는데, 예류의 4요소를 말하는 법의 거울에 대한 법문과 거울의 목적처럼 잘 비춰 보면서 행위를 단속할 것을 말하는 라훌라를 위한 가르침 그리고 거울이나 맑은 물에 얼굴을 비춰 보는의 용례를 소개하였습니다. 또한, 수행을 삶의 메커니즘 위에서 설명하였는데, 수행지도의 개념입니다. 인식 구조에서의 공동 주관의 역할 및 제어는 상()과 심상(心相)에 대한 이해로 모이고, 깨달음의 과정에서의 대상의 전개를 컵의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

 

1. [질문] 중도(中道) ―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인 팔정도(八正道)의 실천


; magga(길)과 paṭipadā(실천)의 차이에서 이해해야 함


● majjhimā paṭipadā =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 majjhimā = dukkhanirodhagāminī


그런데 majjhimā는 majjha[중(中)]의 2차 의미를 가지는 단어 즉 ‘중(中)인 것’입니다. 그리고 dukkhanirodhagāminī는 dukkha[고(苦)]-nirodha[멸(滅)]-gāminī[이끎]입니다.


※ majjha: the middle; the waist. (adj.), middle. (m.) 중(中)


; majjha + ma → majjhima 중(中)의, 중(中)인 것


→ abl.m/nt.s. nom/voc.m.pl nom.f.s. nom/voc/acc.f.pl. majjhimā


그러면 ‘중(中)인 것 = 고멸(苦滅)로 이끄는 것’이 되어서, 다시 환원하면 중(中)은 ‘고멸(苦滅)로 이끎’이라는 의미로 정의됩니다.


「중(中)= 고멸(苦滅)로 이끎」



2. 수행은 마음이 몸과 함께 진행하는 것인데, (DN 22/MN 10-대념처경)/(MN 119-신념처경)/(MN 118-입출식념경)의 3개의 수행 경전으로 대표됩니다. 이 경들이 설명하는 수행의 기법은 마음만큼 몸도 삶에서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3. [질문] 거울과 관련한 주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


1) 법의 거울[법경(法鏡)]에 대한 법문 ― 예류의 4요소 ― (DN 16.11-대반열반경, 법의 거울에 대한 법문)/(SN 55.8-벽돌집 경1)/(SN 55.9-벽돌집 경2)/(SN 55.10-벽돌집 경3)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2_03&wr_id=14/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12_01&wr_id=2

 

2) ‘법의 거울’이라는 이름의 법문 ― ‘이것은 경우가 아니고 여지가 없다.’ … ‘그러나 이런 경우는 있다.’ ― (MN 115-많은 요소를 가진 것 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2_05&wr_id=1

 

evaṃ vutte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acchariyaṃ, bhante, abbhutaṃ, bhante! konāmo ayaṃ, bhante, dhammapariyāyo”ti? “tasmātiha tvaṃ, ānanda, imaṃ dhammapariyāyaṃ ‘bahudhātuko’tipi naṃ dhārehi, ‘catuparivaṭṭo’tipi naṃ dhārehi, ‘dhammādāso’tipi naṃ dhārehi, ‘amatadundubhī’tipi naṃ dhārehi, ‘anuttaro saṅgāmavijayo’tipi naṃ dhārehī”ti.


이렇게 말했을 때, 아난다 존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대덕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아난다여, 그대는 이 법문을 ‘많은 요소를 가진 것’이라는 이름으로도 받아들여라. ‘네 겹의 원’이라는 이름으로도 받아들여라. ‘법의 거울’이라는 이름으로도 받아들여라. ‘불사(不死)의 북’이라는 이름으로도 받아들여라. ‘전쟁의 위없는 승리’라는 이름으로도 받아들여라.”


 

3) 거울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MN 61-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가르친 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7_01&wr_id=1

 

; 신념처(身念處)의 sampajānakārī(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함)의 완결


“taṃ kiṃ maññasi, rāhula, kimatthiyo ādāso”ti? “paccavekkhaṇattho, bhante”ti. “evameva kho, rāhula, paccavekkhitvā paccavekkhitvā kāyena kammaṃ kattabbaṃ, paccavekkhitvā paccavekkhitvā vācāya kammaṃ kattabbaṃ, paccavekkhitvā paccavekkhitvā manasā kammaṃ kattabbaṃ 


라훌라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울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비춰 보기 위한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이처럼 라훌라여, 비춰 보고 비춰 보면서 몸의 업(業)은 행해져야 한다. 비춰 보고 비춰 보면서 말의 업은 행해져야 한다. 비춰 보고 비춰 보면서 의(意)의 업은 행해져야 한다.


 

4) 거울이나 맑은 물에 얼굴을 비춰 보는의 용례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4_12&wr_id=13

 

4. 수행을 삶의 메커니즘 위에서 설명하였는데, 수행지도(修行地圖)의 개념입니다. 1차 인식과 2차 인식으로의 인식 구조에서의 공동 주관의 역할 및 제어는 nimitta[상(相)-밖]와 cittassa nimitta[심상(心相)-안]로 모아지고, 깨달음의 과정에서의 대상의 전개를 주목하게 되는데, 컵의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 → 「해피스님과의 대화(서울 240511) ― 세상2-2)[세 가지 삶의 방식(소유의 삶-존재의 삶-해탈된 삶)과 현상-사실의 영역 & 수행의 골격]」 참조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09&wr_id=92

 

• 수행의 구조 ― 십정도(十正道) ↔ 십우도(十牛圖)/심우도(尋牛圖)(?)


• 수행의 삼분(三分) ― 초삼분(初三分)=삼매의 성취[필수품을 갖춘 삼매], 중삼분(中三分)=여실지견(如實知見)[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법의 위빳사나], 후삼분(後三分)=해탈지견(解脫知見)[사마타-위빳사나] → 「[불교의 요점 시리즈 - 아침독송(240508)] - (AN 4 92~94-삼매 경1~3)[수행의 삼분(삼매-여실지견-해탈지견) & 집중-관찰-느낌]」 참조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o&wr_id=123

 

• 해탈(解脫)과 해탈지견(解脫知見) ― (SN 4.23-고디까 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1_04&wr_id=11)은 일시적 심해탈(心解脫)에서 칼을 쓴 고디까 존자의 일화를 말하는데, 동영상에서는 아라한으로서 칼을 쓰는 경우(아라한에게는 자살이 허용됨을 보여주는 일화)를 보여주는 (MN 144-찬나를 위한 가르침 경)가 혼동하여 함께 서술하였습니다.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144. 찬나를 위한 가르침 경[자살에 대한 불교의 입장(칼을 쓰다) & 중유(중음신) 없음]」에서는 (SN 4.23-고디까 경)의 일화를 통해 일곱 번째 일시적 심해탈을 얻은 고디까 존자의 죽음이 결점 없는 죽음이라는 사실에서 고디까 존자는 해탈(解脫)하였지만 해탈지견(解脫知見)이 없었던 것이 아닌지 말하였는데, 해탈과 해탈지견의 경지의 차이를 보여주는 경우라고 이해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5_02&wr_id=3

 

 

()-()-()-해탈(解脫)의 가르침 (DN 16-대반열반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2_03&wr_id=12

 

• 기능의 단속 ―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함 → 상(相-nimitta)를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것(anubyañjana)인 수(受-cittassa nimitta-심상(心相))를 붙잡지 않음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1_02&wr_id=45

Comments

아빈뇨 2024.06.17 05:55
감사합니다.